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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경 컨설턴트] AI 시대의 인재 쟁탈전
2017-08-24
소주제: AI 시대 인재! 신(新) 르네상스에서 답을 찾다.



프롤로그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복잡한 사고와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 기계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였지만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며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이 주를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Google의 DeepMind에서 개발한 ‘Deep Learning’이라는 새로운 Algorithm을 바탕으로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에서 인간 최후의 보루로 생각되었던 “바둑”에서 놀라운 학습능력과 연산능력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바둑 능력을 선보이며 인간계 최고의 고수들에게 연전연승을 거두고 완벽한 승리를 거머쥔 AI 컴퓨터 ‘Alphago’의 등장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어 졌다. 이로부터 AI에 대한 인간의 관심과 논의가 급증하였으며 머지 않아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하였다.

AI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AI가 어떤 것인 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AI (Artificial Intelligence), 즉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능력과 추론능력, 지각능력, 자연언어의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공학 및 정보기술로 실현한 기술을 말한다.

AI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학습능력, 추론능력, 이해능력이다. 인간에게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능력이지만 이런 능력들을 0과 1로 이루어진 기계가 구현해 내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다. AI시대가 온다는 말은 이런 인간의 너무나 자연스런 장점이 더 이상 장점이 아니게 된다는 말과 같다.

또한, AI시대의 이전에는 뛰어난 지능과 지식을 보유한 사람이 상기한 학습, 추론, 이해 능력의 빠른 조합과 배치를 통해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이득과 지위를 차지해오곤 했다. 그러나, AI의 일상화, 상용화 되는 시기에 이러한 현상의 간극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AI시대가 도래하는 시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각광을 받게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을 정의하고 찾아내어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AI시대의 서막이 14∼16세기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나 인류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본주의 문화운동 “르네상스”의 재림을 불러 올 것이라고 믿으며 글을 시작한다.



AI시대, 기업에서 앞으로 주목해야 할 가치와 인재상

과거 정보의 접근 자체가 어렵고 가치가 있던 시절의 정보 습득, 즉 지식의 선점과 보유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이었다. 혹은, 남들이 쉽사리 따라 하기 힘든 기능의 능숙은 부를 축척하는 또 다른 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AI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상기한 지식과 기능은 더 이상 지름길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지식과 기능은 인간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하는 핵심임은 분명하지만 개인이 획득하고 활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 이상의 영역을 AI가 점차 잠식해 감으로서 인간이 스스로 쌓아온 지식과 기능은 결국 AI의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AI가 발전하면 인간의 지식과 기능은 그야말로 무용한 것이 될 것인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기존에 인간이 쌓아오고 활용하던 지식과 기능을 다른 방향으로 발전, 진화시켜나가야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개척했거나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환경에 놓여 있는 기업과 인재들만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AI시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AI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과 인재의 개척방향은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 것인가?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으나 필자는 크게 2가지의 방향을 생각해 보았다.



통찰(Insight)의 가치

AI가 발전하더라도 쉽사리 따라 할 수 없는 가치 중 하나가 통찰(Insight)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통찰이라는 것은 어떤 주체가 주위의 상황을 새로운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고쳐보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많은 양의 데이터(지식), 빠른 연산처리능력과 학습능력 있다고 하더라도 쉽사리 따라 하기 힘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지면에 그 이유에 대하여 상세히 논하기는 어렵고 언젠가는 고차원의 AI가 나타나 인간에 근접한 수준의 통찰도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시간은 인간의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AI시대가 본격화 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인간을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통찰력을 지닌 인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능(Instinct)과 감성(Emotions)의 가치

다음으로 문화, 예술 등 인간 본능(Instinct)과 감성(Emotions)의 가치다. 음악과 같은 경우에는 꽤나 오래 전부터 컴퓨터로 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고 인간이 흉내내기 힘든 소리 등을 디지털의 도움으로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다. 최근 소설을 쓰는 컴퓨터, 악기를 연주하는 로봇 등이 출연하는 등 문화, 예술의 영역에도 AI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상기한 바와 같이 AI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장점으로 인간의 본능과 감성에 충분히 만족될 만한 퀄리티의 소설과 음악, 그림 등 예술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까? 만약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AI가 인간의 할 수 있는 영역에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영원히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에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하므로 ‘본능과 감성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재가 각광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AI시대형 인재!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얼마 전에 지인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 같이 ‘제 4의 혁명’이 회자되는 시기에 프로그래머를 뽑는데 컴퓨터 공학에서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친구와 어문학과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친구 중에 어떤 친구를 뽑을 것인가?”였다.

필자는 어문학과에서 인문학을 배우고 졸업한 친구를 뽑겠다는 의견을 냈다.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었는지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냐는 두 번째 질문에 이런 답변을 하였다.

“사실 과거와는 달리 프로그래밍의 방법이 많이 달라져서 빠르면 몇 달 혹은 2~3년 가르치면 바보가 아니라면 원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지만 인문학(혹은 언어)을 공부한 친구들의 소양과 통찰은 단 시간에 쌓을 수 없는 영역이고 앞으로 인문학에 대한 높은 지식은 분명히 회사에 이득이 될 것이다.” 이었다.

상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AI시대에 어떤 인재가 적합할 것인지 정의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필자는 크게 2가지 유형의 인재에 주목하기를 권한다. 일단 알아야 찾을 것이 아닌가?





통섭(Consilience)형 인재: 공학과 인문학(예술 등)은 더 이상 배다른 형제가 아니다.

통섭(Consilience) 이라는 단어와 함께 얼마 전에 회자되었던 이야기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탄생시킨 ‘아이폰 및 그 시리즈’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었으며 공학에 예술을 담아 인간의 본능과 감성을 자극하였고 그 가치를 배가시켜 ‘애플’의 그야말로 ‘대단한 성공’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이다. 이 스토리에는 ‘스토리가 있는 공학’, ‘공학은 결국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발전하고 있다.’ 라는 말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즉, 언뜻 보면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공학과 인문학(예술)의 융합(Convergence)과 그를 통하여 생겨난 시너지(Synergy)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한 예로, 지금은 IT기술의 총체로 여겨지는 게임산업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조잡한 그래픽과 엉성한 캐릭터로 구성된 일차원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며 단순한 조이스틱 조작과 그의 반복으로 운용되어 코흘리개 아이들 혹은 성숙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의 저급한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게임에 소위 프로게이머라는 전문집단이 탄생하였고 심지어 게임방송채널 및 국제게임올림픽 등과 같은 다양한 채널과 문화가 생겨나게 했으며 “게임산업”이라는 말까지 태동시켰다.

필자는 그 이면에 ‘공학(Technology)과 인문학(Story, Art, Music etc.)의 융합’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치밀하고 탄탄하게 구성된 스토리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존재하고 살아 있는 듯한 정교한 그래픽과 사운드, 사용자가 생각하는 데로 움직이고 심지어 타인과도 교류할 수 있는 게임에 사용자는 재미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게임산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공학과 인문학에 대해 열려있는 통섭형 인재가 AI시대에 찾아야 할 인재이며 ‘국문학과의 게임 좋아하는 문학청년’, ‘고전과 역사서 읽기를 좋아하는 공학도’와 같이 본인의 전문영역 외의 다양한 영역에 관심과 소양이 있는 인재들을 발굴, 교육시켜 이들을 적극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인본주의(Humanism)형 인재: 인성(Humanity)과 도덕(Ethics)의 반격

19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 중에 린 타로 감독의 TV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1977~1979, 원작: 마쓰모토 레이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 999호’에 탑승한 주인공 ‘철이’, 그의 조력자이지만 의문에 싸여 있는 미모의 여인 ‘메텔’의 파란만장한 우주여행을 문명의 발전과 현실, 세기말적 불안감과 희망에 대한 대서사시로 잘 녹여낸 걸작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인류의 최첨단 과학력으로 만들어 낸 기계화 도시와 영원한 생명을 담보로 기계화 되어 인간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로봇과 사이보그(기계인간)들이 나오는 세계이다. 옴니버스 형식을 지닌 이 작품은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기계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는데 무려 40녀년 전에 쓰여진 이 애니메이션과 최근 놀랍게 발전하고 있는 AI의 시대에서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 꽤나 닮아있다.

필자는 그간 물질적인 성장과 발전에 매몰되어 달려오던 현실세계에 AI라는 날개가 달리게 된다면 ‘은하철도 999’의 현실화가 더 이상 만화 속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요즘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의 기술들은 이미 개발이 완료되었으며 현실화, 상용화를 논하는 단계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제 4의 혁명’의 핵심인 융합(Convergence)이 완성된다면 만화 속의 풍경이 더 이상 만화 속의 풍경이 아닐 수 있게 될 것이며 인간의 생활은 급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상기한 문제점과 우려 사항들의 예방과 치료의 핵심은 바로 ‘인성과 도덕’이라고 생각한다. ‘인성과 도덕’이 상실된 물질만능주의와 엘리트 중심의 사회가 지속된다면 양극화는 점차 가속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결국에는 소수를 제외한 기업과 인재 모두가 멸살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기업과 인재 모두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기업의 근간인 인재가 살아남고 기업도 영속성을 가지며 끊임 없이 가치창출을 해내며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공부는 잘하지 못하지만 운신이 어려운 노인들이 불쌍하다며 스스로 주말마다 요양원 봉사를 하면서도 즐거워하는 ‘못난이 고등학생’

- 생면부지(生面不知)의 타인을 본인의 생명도 돌보지 않고 구한 ‘지하철 의인’

-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였지만 직분과 사명을 다하여 생명을 구한 ‘열혈 소방관’

- 묻지마 폭행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여성을 구한 ‘동네 협객 아저씨들’

- 사고를 내고 뺑소니 하는 차량을 끝까지 쫓아 검거에 결정적 도움을 준 ‘택시 영웅’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버튼 하나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시기가 왔다. AI시대에서 기술 및 정보의 개인적 습득능력과 역량발휘는 더 이상 핵심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AI에서 개발되는 여러 가지 기술 및 인프라들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다만 그 버튼을 누르는 자의 ‘인성과 도덕’ 그것이 중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식상한 스토리에 그 답이 있다. 결국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핵폭탄의 버튼을 수호하지만 만약에 악당이 주인공을 물리치고 핵폭탄 버튼을 차지했을 때의 상황과 공포를 생각해 보라!

상기에 나열한 ‘인성과 도덕’이 검증 혹은 예상되는 사람들이 왜 AI시대의 인재로써 중요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대에 적합한 인재! 우리 기업에 데려 올 수 있을까?

사실 AI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데려오는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1. AI시대의 인재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

2. 정의에 부합한 사람을 찾는다.

3. 다른 조건은 최대한 지양(止揚)하고 뽑는다.



물론, 상기에 기술한 “AI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데려오는 방법”이 말장난 같이 느껴지겠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간단하다”는 말이 “쉽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를 내리고 그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는 것 까지는 쉽겠지만. 3번인 “다른 조건은 최대한 지양(止揚)하고 뽑는다.”라는 부분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필자가 헤드헌팅을 하며 수많은 인사담당자와 채용결정권자를 만나고 채용이 왜 어려운지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아쉽게 느낀 점이 ‘기존의 틀을 깰 생각이 없으면서 틀을 깨줄 사람을 찾는다’는 점이었다. 심지어는 ‘틀을 깬다.’라는 의미조차도 모르고 상상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써내려 온 필자의 주장과 정의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궤변(卦變)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 완벽하지 않고 좀 더 훌륭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의견이라도 동의할 생각이다.



그러나,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다시 말하지만 AI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데려오는 방법은 정말로 간단하다. “다른 조건은 최대한 지양(止揚)하고 스스로 내린 AI시대의 정의에 부합하는 인재를 뽑는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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