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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영 대표] 접대없이 영업 없다.. 룸살롱 접대 여전

유명 대기업 A사는 얼마 전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협력업체나 거래업체와는 거래 관계를 끊겠다고 발표해 업계의 관심을 촉발시킨 바 있습니다. 신문 지상에도 크게 보도되기도 했지요. 이 회사 대표자가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터뷰 기사도 보았습니다. 워낙 시장 장악력이 높은 회사이다 보니 자연스레 A사 임직원들은 거래업체로부터 접대를 받는데 오래 전부터 익숙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터라 과연 어느 정도 지켜질 것인지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부터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 바뀌겠구나라는 신선한 기대를 낳은 것도 사실입니다.

“룸살롱 술값 계산해 달라” 밤늦게 전화
그러나 이런 기대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됐습니다. A사의 협력업체 B사에 다니고 있는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제 기대를 무참히 깨어버리더군요. A사의 한 직원이 심야에 B사의 A사 담당자에 전화를 걸어 모처에서 술 한잔 하고 있는데 영수증을 처리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룸살롱에서 자신들이 마신 술값을 협력업체에게 부담지운 것이죠. 금액도 B사의 자체 접대비 한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B사는 오래된 관행이라고 판단해 그 술값을 대신 내주었다고 합니다. 제 지인은 “A사도 위에선 윤리경영을 강조하는지 몰라도 아래에선 감사팀 눈치만 살필 뿐 예전과 크게 바뀌지 않은 느낌”이라고 말하시더군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는 윤리경영을 선포한 기업들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에 윤리강령을 발표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몇몇 친구나 지인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했지요.
그랬더니 이 역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습니다. 지난 2000년에 윤리강령을 선포하고 돈이나 술 접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전자업체 C사에서도 여전히 골프접대는 물론이고 룸살롱 접대를 받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중소 협력업체에 술값 영수증을 대납케 하는 앞선 A사 사례와 똑 같은 일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답니다. 2년전에 3세 경영자가 총수 자리를 넘겨받으면서 윤리경영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모그룹에 납품을 하고 있는 중소기업 임원은 “룸살롱 접대를 해야 뭔가 일이 풀리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향응성 접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중소기업 임원 “접대 없이 영업 없다”
커리어닥터의 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회사는 어떤가요? `갑’과 `을’이란 표현 속에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이에 주종 관계가 형성돼 있지는 않은지요? 갑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고 을은 그런 횡포를 군말없이 수용하고 견디고 있지는 않은지요? 을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갑에 접대 공세를 펴고 있지는 않은가요?

1990년대 초반부터 윤리경영이라는 이슈가 등장했던 것은 이 같은 `갑’-`을’ 구조 속에서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반성때문이었습니다. 능력이 없지만 술 접대를 잘 하는 기업들을 거래업체로 선정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과연 제대로 된 제품과 용역이 산출되겠느냐는 것이죠. 이런 부패가 국가 경제 전체를 좀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합니다.

갑-을 구조 속에 멍드는 국가경제
하지만 저는 모든 기업들이 위의 사례와 같지는 않다고 믿고 싶습니다. 한 대기업 그룹에서 최근 벌어진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회사 역시 전사 차원에서 윤리강령 실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감사팀은 한 부서 간부가 협력업체로부터 술 접대를 받은 사실을 적발해서 사내 징계 위원회에 회부했다고 합니다. 소명 과정에서 그 간부는 5차례 이상 접대를 거부하는 등 협력업체의 끈질긴 접대 공세를 피하려는 노력을 했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정상이 참작돼 해고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중징계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접대를 받았다는 이유로 해고까지 된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거래업체와 만나 식사를 할 일이 있다면 오히려 먼저 계산을 하라는 것이 이 회사의 지침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요즘 공연 티켓이나 스포츠 경기관란권을 거래 업체에 제공하는 `문화 접대’라는 새로운 형태의 접대도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기업의 윤리경영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경영진과 사내 감사팀의 역할은 물론 중요합니다만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이 더욱 결정적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룸살롱 접대 방식은 사회 전체의 비용을 높이게 만드는 부작용을 더할 뿐입니다. 정치인들의 부패를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엄격한 자기 통제 속에서 직장 생활을 해나갔으면 합니다. '뭐 이 정도는’라는 생각 속에서 우리 사회의 온전한 기반이 조금씩 조금씩 흔들려 간다는 생각을 해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