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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지름신'이 강림하는 이유
2006년 8월 '가짜 명품 시계'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기를 당했던 유명 연예인 중 한명인 K양은 5900만원의 피해를 봤다고 한다. 중국산 부품을 사용한 별 볼일 없는 시계를 스위스 황실 시계라고 속여 1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았는데 많은 연예인과 부유층이 이 시계를 샀다. 그들은 왜 명품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수 천 만원이 넘는 비싼 물건을 샀던 것일까?


여기에는 '고정관념의 법칙'이라는 함정이 숨어있다. 이들은 모두 ‘비싼 것은 품질이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전까지의 많은 구매를 통해 비싼 것이 값어치를 한다는 경험을 강화시켜왔다. 이런 와중에 충분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가짜 명품 시계에 노출됐다. 이들은 이것 역시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당연히 품질도 좋은 명품일 것이라고 가정하며 구매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상황에서 심각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판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는 지름길을 찾는데,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름길은 ‘고정관념’이다. 특히 충분한 정보 수집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결정을 하지 못하는 채로 방황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최선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선택의 속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고정관념은 긍정적인 도구지만 판매자들이 파고드는 표적이 된다.

이 사례에는 '권위의 법칙'도 사용됐다. 사기를 당한 연예인들은 사기꾼에게 포섭된 다른 연예인이 가짜 명품 시계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쉽게 구매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해당 물품을 사용하는 다른 연예인, 즉 이들이 생각하는 ‘나름대로의 전문가’에 의해 설득을 당한 셈이다. 권위의 법칙에 따라 유명한 다른 연예인의 권위를 믿고 따른 셈이다.

이 법칙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있다. 블레이크와 마운튼의 사회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의 31살 연구조교는 권위의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정장을 입고 무단횡단을 하거나 작업복을 입고 무단횡단해서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사했다. 실험 결과는 정장 차림일 때 그를 뒤따른 보행자수가 작업복 차림일 때보다 3.5배나 더 많았다. 정장의 권위가 사람들을 무단횡단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일반인 상당수는 이미 '권위의 법칙'에 노출돼 있다. 바로 광고다. 유명 연예인이 사용하는 화장품이나 집에 살면 일반인도 연예인과 똑같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상품에 대한 그들의 설명을 믿고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 즉 유명 연예인이 광고를 하기 때문에 해당 제품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권위의 법칙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새내기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이 디지털카메라가 필요해 인터넷에서 가격 비교 사이트를 찾는다. 사고자 하는 디지털카메라가 보통 50~60만원인데, 다행히 47만원인 최저가 쇼핑몰을 찾았다. 하지만 이때 해당 쇼핑몰은 디지털카메라만 47만원에 팔지 않는다. 디지털카메라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메모리카드, 보조배터리, 카메라 가방, 삼각대 등 부속품을 함께 구입해야만 싼 본체가격을 살 수 있게 구성해놓은 상태다. 부속품 가격은 10~30만원 상당이다. 과연 여기서 구매를 해야 할 것인가 사지 않아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대조효과의 법칙'과 '고정관념의 법칙'이라는 함정이 있다. 고가의 디지털카메라를 사기 위해 47만원을 내기로 마음먹은 소비자는 이보다 한참이나 저렴한 2~5만원 상당의 메모리카드, 삼각대 등을 쉽게 구입한다. 또 카메라 본체가 가장 싸기 때문에 나머지도 가장 쌀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작용한다. 하지만 이런 업체 대부분이 부속품 가격을 다른 일반 가격보다 1.5배에서 2배가량 비싸게 팔고 있다. 본체를 미끼처럼 저렴하게 팔기 때문에 부속품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본체 가격을 보기 전에 메모리카드 등의 부속품이 5만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비싸다고 생각해 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디지털카메라를 사기위해 47만원을 지출하기로 마음을 정한 다음에는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대조효과라고 하는데 처음에 제시된 사물과 나중에 제시된 사물의 차이를 원래 실제 차이보다 훨씬 크게 인식한다는 것을 말한다. 대조효과 법칙은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에 언급한 소비자보고서의 한 기사로 소개된 당구대 판매 실험으로 입증된 바 있다. 브룬스윅이라는 당구대 제조회사는 1주일 동안 가장 싼 모델부터 점차 비싼 모델을 소개시켜주는 전통기법으로, 그 다음주 1주일 동안은 가장 비싼 모델부터 점차 싼 모델을 보여주는 판매법을 사용했다. 첫 1주일 동안 팔린 당구대 평균 가격은 550달러, 하지만 나중 1주일 동안은 1000달러를 넘었다.

이런 대조효과는 자동차 판매와 부동산 매매와 같은 고가품의 구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자동차 영업사원은 먼저 기본 품목만으로 가격 흥정을 매듭짓는다. 그런 다음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옵션을 하나하나씩 추가한다. 최종적으로 보면 옵션이 처음에 제시한 기본 품목 가격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미 차를 구입하기로 했기 때문에 옵션을 빼기가 쉽지 않아진다.

또 집을 구입하거나 세를 얻을 때 대부분의 부동산 중개인은 처음에 좋지 않은 집을 먼저 보여준다. 그런 다음 바로 평범하거나 수리가 잘 된 집을 보여준다. 이럴 경우 소비자가 느끼는 두 집 간의 상태 차이는 실제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중개인은 두 번째 집을 좀더 비싸게 계약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속이고 속는 경제 사회에 살고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쉽게 속을 가능성이 높다. 매사에 꼼꼼하게 챙길 수는 없을지라도 자신의 판단기준이 '고정관념과 권위의 법칙'에 따른 것은 아닌지 고려하면 질 낮은 물건을 값비싼 가격에 속아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대조효과의 법칙'을 잘 기억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과소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의 과학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