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9월, 링컨은 노예해방에 관한 과감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신과 약속했다. 이 일을 꼭 해낼 것이라고!” 이 짧은 구절을 통해 우리는 링컨이 지녔던 엄청난 내적
에너지를 감지할 수 있다. 육체적으로는 비록 연약한 남자였으나, 그의 내적 힘은 이렇게 분명하고 강인하며
올바른 것이었다. 이런 힘이 있었기에 링컨은 주변의 비웃음과 조소를 이겨낼 수 있었고, 노예 소유자들의 거친 위협에 맞설 수 있었으며, 동지들의 비겁한 후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면서 노예해방을 성취해냈다.
그렇다면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사업을 완수하게 만든 링컨의 이 확고부동한 신념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링컨의 이런 신념을 비웃고 조롱하거나, 무모한 것이라고 매도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러한 강인한 신념이야말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에너지의 정체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는 결코 행동에 나설 수 없으며, 스스로 돕지 않는 자라면 하늘도 도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영국의 고위 정치가인 윌리엄 피트는 자신이 장관직에서 해임되었을 때 데번셔 공작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오로지 나만이,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조지 밴크로프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1주 동안 장관직은 공석으로 비어 있었다. 혼란은 계속되었고, 아무도 혼란한 시기의 장관직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오직 윌리엄 피트 주니어만이 정부의 요직에 자기를 다시 기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왕과 귀족들은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그에게 새로이 나라의 살림을 맡겼다.” 이처럼 윌리엄 피트 역시 일견 오만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자기 확신이 강했던 인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자기 확신이 아니었다면 그는 정부의 요직에 다시 복귀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저 그런 장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벤자민 디즈레일리 역시 실패 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의회에 진출한 뒤에도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수많은 멸시와 조롱을 받아야만 했던 인물이다. 영국 의회의 동료들은 그를 비웃고 야유의 휘파람을 불어댔다. 이런 비웃음과 야유에 대해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들은 결국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아무도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 때조차, 그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디즈레일리는 오래지 않아 영국의 주도적인 정치인이 되었고, 나중에는 영국의 경영권을 한 손에 쥐기에 이르렀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포기한 사람을 믿어줄 바보는 이 세상에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신뢰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자, 성공을 위한 첫 번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신뢰가 아예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수행되는 일이 성공을 거둘 확률은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처음부터 자기가 자신의 일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있다면, 그에게 실패는 피할 수 없는 판결이 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승부에서 이길 수 있는 수단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싸울 수 있고, 싸우는 자만이 이길 수 있다. 확신이 없어 싸움에 나설 수 없다면, 패배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셈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용기와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실패·조소·비웃음을 극복할 수도 있고, 겉으로 보기에 힘겨워 보이는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도 있으며, 좌절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버리고 오직 목표를 향해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도 있게 되는것이다. 잘 관찰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늘 실패란 실패는 다하면서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대게 스스로를 ‘재수 없는 놈’이라거나 ‘불운한 놈’이라고 부르며 스스로를 비하한다. 이런 사람들은 또 반복되는 실패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도할 용기를 완전히 잃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들은 밤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괴로워하고, 한낮의 광장에서도 구석에 몸을 숨긴다. 단, 당신이 그와 가까운 주변 사람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눈물겨운 푸념을 들어주어야 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이 하면 되는데, 내가 하면 안 되더라니까, 글쎄. 재수 없는 놈이라 그렇지 뭐. 한마디로 상황이 너무 안 좋았어!” 주변에서 이런 넋두리나 푸념을 듣게 될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들이 불쌍하다고 여겨지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마도 인간 세상에서 이런 책이나 읽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 천사가 분명하니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이런 푸념을 듣게 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짜증이다. 상황을 탓하고 자기 책임은 은근슬쩍 비켜 가려는,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조차 나타나지 않는 이런 넋두리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어두운 실패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의심과 소심함을 퍼뜨린다.
이런 것들을 좋아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만나면 마치 페스트를 전염시키는 환자를 만난 것처럼 생각해서 피하려고만 들 것이다. 그들을 도울 수도 없고, 도와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단 하루를 살아도 주인공으로 살아라(원칙 01 최고의 자본은 자기 신뢰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