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추석이라는 낱말을 듣게 되면 생각나는 장면이 많지 않습니까?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유학할 시절, 또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직장인 초년병 시절에는 추석 맞이 귀향이 기다려지기도 했지요. 맏아들 녀석이 언제 올까 집 앞 골목길을 서성거리며 담배를 태우시던 아버지를 발견하는 순간, 대문 앞을 지키는 충견 복실이가 꼬리를 마구 흔들면서 달려드는 바람에 모처럼 차려 입고 간 양복에 개털이 묻어도 기분좋던 순간.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죠. 연로한 부모님의 볼은 갈수록 패여갑니다. 주름살의 골은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도 없어집니다. 고향집은 왜 갈수록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지방 출신 직장인들에게는 추석 귀향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아무리 경기 불황이니 고실업률 시대니 해도 어려운 환경에 서울 유학까지 보내주신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를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도 더해지죠. 특히 장남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동네 수재로 소문났던 장남
벤처회사 망한 뒤 실업자 신세, “고향길 두려워”
얼마 전 만났던 30대 후반의 지방 출신인 장남 A씨는 최근 반년간 새로운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수재로 소문났던 그는 명문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 대학원까지 마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했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벤처 바람을 타고 선배와 함께 창업을 한 것이 5년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벤처가 자금난을 못 견뎌 문을 닫게 됐답니다. 동업한 선배의 제안으로 컴퓨터 부품 유통업에도 손을 댔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 덕분에 생계는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A씨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며 “이런 사실을 모르시는 부모님께 죄송스럽기만 해요. 추석 귀향이 두려워지기까지 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40대 초반의 장남 B씨는 또 다른 이유로 고통 받고 있더군요. 일 밖에 모르면서 살아온 직장생활 15년.
휴식 조차도 죄악시하며 회사 일에 모든 에너지를 투입한 덕분에 그는 회사에서 입사 동기들보다 2년 정도 빨리 부장으로 승진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일 중독자’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대로 가면 임원 승진도 문제 없어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가정에서 일어났습니다. 주말까지 회사 일에 바치는 남편을 보다 못한 아내가 이혼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까지도 아빠와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고 하더군요. B씨의 아내는 이번 추석 귀향에 동행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B씨는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리라 생각했는데 충격이 큽니다”라면서 “이번 추석 때 홀어머님과 동생들을 만날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괴로워하더군요.
일 중독자로 소문나며 승진 승승장구하던 장남
가정 방치 이유로 이혼 요구 당해 “부모님 뵐 면목 없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고통스럽겠지만 특히 장남들로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아마 상황은 다르겠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추석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장남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얼마전 한 취업정보 회사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장남들이 구직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동생들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모의 기대가 다른 동생들의 경우보다 큰데다 장남은 동생들보다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사회적 통념과 스스로의 자기 다짐이 워낙 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장남 직장인은 “요즘 드라마 `영웅시대’를 즐겨 시청하고 있는데 주인공인 천태산이 장남으로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제 자신과 비교돼 속이 쓰린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장남 직장인들께 그 무거운 책임감을 벗어던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책임감에서 벗어날 장남들이 아닌 점을 제 경험을 통해서라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남 구직자 스트레스 더 크다…기업 “같은 값이면 장남 뽑겠다”
저는 장남 여러분께 자신감을 불어넣어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어느 방송사 기자가 쓴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라는 책이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저자 역시 5남매의 장남이라고 하죠. 저자는 힘들지만 어렵게 어렵게 장남의 역할을 해낸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장남들이 갖는 장점을 강조하고 있더군요.
장남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리더십과 책임감입니다. 예외인 경우도 많겠지만 일반적으로 장남들은 어려운 상황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어차피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오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연로한 부모님을 대신해 가족 경영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느 동생보다도 고민을 더 한 사람들입니다.
앞서 언급한 취업 정보회사 조사에서도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동등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장남을 우선해 뽑겠다고 응답한 것도 이 같은 장남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장남 여러분은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노하우를 이미 익힌 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힘 내시기 바랍니다.